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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오버권_사진 이야기] 최고의 김밥집을 보내며_20180227

 

어릴 적 살던 동네 안암동.

지금도 이곳에 자주 가는 편이다.

불알친구가 여전히 안암동에 살고 있고,

내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과도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암동에 갈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예전, 내 머릿속 그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땅만 그대로이고, 거기에 있던 집과 건물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얼마 전 중국에 있다가 잠시 들어온 동네 친구도 못 알아보겠다며 혀를 내둘렀었다.

심지어 지금도 한 두 달이 지날 때마다 새 건물이 올라올 정도니까.

이른바 재개발, 재건축.

그 바람은, 역시 내가 자주 들르는 곳 중 하나인 녹번역에도 불어 닥쳤다.

어마어마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는데,

그 때문에 녹번역은 지도가 바뀔 정도의 대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이리도 많은 아파트를 올리는데 집 없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 현실, 정말이지 정상이 아니다.)

 

타워크레인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공사차량이 들락날락 거리는 건 나와 큰 상관이 없으나

아쉬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재개발의 여파로 녹번역 바로 옆에 있는 명소, ‘김밥집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잔치잔치’, ‘착한 맛집등등의 간판은 붙어있으나,

무엇이 진짜 가게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곳을 알게 된 건 굉장히 오래전 일이다.

녹번역은 내가 제일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역이어서,

역 바로 옆에 있는 김밥집에 출출함을 달래고자 들어갔었다.

 

가게 크기는 두 평 정도로 굉장히 작았다.

사장님과 사모님,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가게 안쪽 모퉁이에는 시추 한 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절하고 웃는 낯의 사모님과는 달리

사장님은 굉장히 무뚝뚝하고 약간 화난 표정이어서(특히 눈썹 부분이)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곳의 김밥을 입에 넣은 순간, 깜짝 놀랐다.

김밥 한 줄에 1000, 겉보기에는 김밥 천국류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무슨 비결일까, 깔끔한 첫 맛과 맛깔나는 뒷맛은

나를 방앗간 앞을 지나는 참새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나만 그 매력에 반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 곳을 찾는 단골이 상당히 많아서

오전 11시가 넘어 찾아가면 김밥은 이미 동이 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김밥이 1500원으로 올랐지만

이 곳을 찾는 손님은 줄지 않았고,

주 메뉴인 김밥 외에 김치, 참치 주먹밥, 샌드위치 등의 인기도 상당했다.

 

이 김밥집의 사장님, 사모님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건 4, 5년 전으로 기억한다.

가게에서 키우는 시추의 이름은 똘이였는데

어느 날 나는 사장님께 내가 그린 시추 그림을 건넸다.

 

강아지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이거 제가 그린 그림인데 선물로 드리려고요.”

 

사모님이 더 좋아하실 거 같았는데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림을 받아든 사장님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활짝 웃으셨다.

처음 보았다. 사장님의 웃는 얼굴을.

 

이 인연 이후,

김밥집을 찾아가면 사장님은 뭔가를 하나씩 더 챙겨주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김밥, 어떤 날은 주먹밥, 어떤 날은 샌드위치

사모님 눈치까지 봐가며 챙겨주시는 통에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참 감사했다. 첫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후 그림을 크게 인쇄해 액자도 갖다 드리고,

새 그림이 완성되면 하나씩 챙겨드렸다.

그림을 받을 때마다 너무 좋아하셔서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

 

그리고 2018,

앞서 적은 것처럼 재개발의 그림자가 녹번역에 드리웠다.

나는 좀 걱정이 되어 사장님께 여쭸다, 어떻게 하실 계획이냐고.

 

글쎄, 아직 잘 모르겠어. 생각 중이에요, 어떻게 할지..”

 

사장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밥집의 문 닫는 시간은 평소보다 눈에 띄게 빨라졌다.

 

2018226일 아침.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일반 김밥 두 개를 주문한 나에게 사장님은 참치 김밥을 얹어주셨다.

 

마침 잘 왔네..가게 오늘까지만 하고 정리하려고..”

?”

 

정말 아쉬웠다. 나는 사장님께 이렇게 맛있는 김밥인데,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시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사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장사를 한 게 23년이 되었어. 사업을 몇 번 크게 실패하고, 그래서 시작했는데. 그동안 아내가 한 번도 쉬지를 못했어요. 아내한테 미안해서, 이제 그만 해야겠어.”

 

나는 사장님께 다른 곳에서 혹시 새로 시작하시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고 말씀드렸고,

사장님은 내 전화번호를 달력에 꾹꾹 눌러 적었다.

김밥집을 나서고, 몇 걸음 떨어져 카메라를 꺼냈다.

이미 빨간 스프레이로 X표시가 그려진 옆 가게의 셔터가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이 재개발 되지 않았다면, 이 김밥집이 이렇게 허무하게 없어졌을까.

모든 재개발이 나쁘다 할 수는 없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금할 수 없다.

 

이제 얼마 후,

이곳에 어떤 건물이, 어떻게 세워질까.

하지만 이 곳을 스칠 때마다 김밥집이 떠오를 거 같다.

어느 곳보다 맛있는 김밥과, 그림을 받아든 사장님의 환한 미소와,

가게 한 구석을 지키던 똘이의 모습이

여전히 아른 거릴 거 같다.

 

2018226,

녹번역에 있는

최고의 김밥집을 보낸다.

 

http://blog.ohmynews.com/overkwon/553960

 

[오버권_사진 이야기] 최고의 김밥집을 보내며_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