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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오버권_사진 이야기]용문, 최종원 선생님, 그리고 대두 김영욱 선생님_20180207

 

용문,

중학교, 고등학교 도합 6년을 보낸 나의 모교.

(최근 몇 몇 사람에 의해 그 빛이 바래긴 했지만)

누구나 그렇듯 모교는 많은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이다.

 

스승의 날을 포함해서, 1년에 두 어 번씩 찾아뵙는 선생님이 있다.

국어를 가르치는 최종원 선생님.

지금은 고등학교에 계시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중학교에 계셨다.

당시 내가 가입했던 방과 후 서클은(놀랍게도) 문예부였는데,

(원래 친구와 베드민턴 부에 가입하려고 갔는데 인원이 다 차서 그만..)

담당 선생님이 여성일 거라는 우리의 기대를 처참히 깨버린 게

바로 최종원 선생님이었다.

 

시 쓰고, 글 쓰고, 돌려 읽고

참 재미없는 서클이었다.

최종원 선생님께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는데

당시 나와 친구의 장난을 잘 받아주셔서 친밀하게 지내다가

방학 때 편지도 주고받고, 졸업 후에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게 됐다.

 

그렇게 최종원 선생님을 만나면서 놀란 것은

놀랄 만큼, 제자들을 평등하게 대해주신다는 거였다.

마치 친구처럼, 절대 가르치려 들지 않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들어주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 정말 좋은 분이구나.’하고 새삼 느꼈다.

 

20182.

이번 약속 장소는 최종원 선생님이 제안한 경복궁 쪽 횟집이었다.

잔을 부딪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대두 김영욱 선생님의 댁이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두

 

김영욱 선생님의 별명, 그렇다, 머리가 크신 분이다.

고등학교 때 국어를 참 잘 가르치셔서 좋아했던 선생님이다.

하지만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난 굉장한 장난꾸러기였는데,

어느 날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 선생님의 등 쪽으로 몰래 다가가

포스트잇을 붙이곤 했었다.

 

그 날 장난 후, 킥킥대며 친구들과 떠들고 있었는데

호출이 왔다. ‘대두로부터.

 

..’

 

몇 대 얻어맞고 잔뜩 혼나면서

뭔지 모르게 울분이 터졌다.

상담실 밖으로 나오면서 칠판지우개 털이 통을 세게 걷어찼고,

김영욱 선생님이 그 소리를 듣고 상담실 밖으로 뛰어 나왔다.

다행히 친구들이 나를 잽싸게 끌고 가서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학교 건물의 높은 돌 벽.

나는 미리 준비한 스프레이로 벽을 장식했다.

 

김영욱 XXX'

 

CCTV도 없었기에 아무도 나의 행적을 알 수 없는 완전 범죄.

그래, 소심하지만 이 정도면 나름 복수가 되었겠지.’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무용담이 또 하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글씨는 말끔히 지워졌지만 복수는 이미 마쳤으니 상관없었다.

 

그 뒤 우연히 길거리에서 김영욱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이 때 나는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살짝 철이 들어 있었고

선생님을 떠올리면 죄송스런 마음이 앞섰지만

내가 그 일을 했노라고 감히 얘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2018,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정도로, 유독 국어를 좋아했고, 국어를 잘 했던 내 친구 태환이는

최종원 선생님께 김영욱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청했고,

10여 분 후 김영욱 선생님께서 술집에 도착했다.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라 선생님의 외모는 많이 변해 있었지만

그 능글능글한 말투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은 학교를 퇴임하시고 그림을 배우고 계신다고 했다.

어른 대 어른으로서 김영욱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는데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선생님을 알게 됐다.

선생님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말씀하셨고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젊은 우리들보다 더 깨어있는 사고를 보여주셨다.

최종원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 주셨다. 큰 감동을 받았다.

 

1차 자리가 파할 무렵,

난 술기운을 빌려 선생님께 과거 나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인데, 나의 낙서를 지운 것은 김영욱 선생님 본인이었다.

지우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더 미안해졌는데

선생님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충분히 그럴 만 했고,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정말로 감사했다.

 

2,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난 선생님께 그림 몇 장을 선물했다.

선생님은 수줍게 휴대폰을 꺼내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셨다.

놀라운 솜씨였다.

선생님의 올해 목표는 그림들을 모아 달력을 만들어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난 말씀드렸다. 그림이 완성되면 그 달력을 내가 만들어 드리겠다고.

 

술자리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포옹과 인사를 나눈 후 기분 좋게 헤어졌다.

최종원 선생님, 김영욱 선생님.

두 분 모두 학생을 존중하는, 깨어있는, 존경스런 선생님들이시다.

 

난 나의 제자들에게 저런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노력하자, 좀 더, 좋은 사람,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서.

 

 

http://blog.ohmynews.com/overkwon/553578

 

[오버권_사진 이야기]용문, 최종원 선생님, 그리고 대두 김영욱 선생님_2018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