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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오버권_사진 이야기]홈펫 동물 병원, 만남과 변화 그리고 고마움_20180311

 

 

2003, 또는 2004.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 일만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자료 사진도 찍을 겸 해서,

길을 걷다 동물 병원을 발견하면 들어가서 만화가인 것을 밝히고 동물 사진을 찍곤 했다.

(지금은 거의 안 한다. 사진을 엄청 많이 모았기 때문인 거 같다.)

그 날 일정은 미아동과 미아삼거리 언저리에서 있었는데,

터덜터덜 걷다가 도봉세무서 맞은편에 서 있는 큰 동물병원을 발견했다. 처음 본 곳이었다.

 

, 이렇게 큰 데가 있었나?’

 

난 평소처럼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인데..혹시 여기 있는 강아지들 사진을 좀 찍을 수 있을까요?”

 

그때 카운터 뒤에 있는 원장실에서 서글서글한 인상의 수의사분이 불쑥 튀어나왔다.

 

만화 그리신다고요?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실 수 있으세요?”

 

그게 홈펫 동물병원 오승섭 원장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우린 그 날 대화를 시작으로 수많은 얘기를 나눴다. 원장님과는 10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났지만, 말이 잘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의 존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은 동물병원과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쉽게, 그러니까 만화라는 수단으로 풀어내고 싶었고, 나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동물에 대한 의학적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지식이 없어 그려낼 수 없는 상황. 우연한 만남이지만 그야말로 딱 맞는 조합이었던 것이다.

홈펫 동물병원은 오승섭 원장님과 오 원장님의 후배인 송태호 원장님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난 오 원장님과 죽이 잘 맞았다. 한 번 얘기를 시작하면 2,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정치적 성향도 잘 맞았다.)

 

이후 원장님의 얘기를 듣고, 원장님께서 제공해주신 책으로 미약하지만 수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참 재미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기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포스터와 브로셔를 제작했다.

다른 동물병원에서 내가 그린 포스터가 붙어있는 것을 봤을 때 흐뭇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 홈펫 동물병원 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동물병원 38.5’라는 만화도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한 것을 모아 과학병원 38.5(2008)’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원장님과의 만남이 없었으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었다.

 

원장님과 나는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만남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동물에 대한 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원장님이 쓰고 있는 글에 대한 회의나 평가, 그리고 발명품 구상까지, 그 중 실제 진행된 건 많지 않았지만 그런 회의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 통해 생각이 넓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어느 것보다 잊을 수 없는 건, 우리 미야에 관한 일이다.

당시 나는 미야라는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미야가 몸이 안 좋을 때 원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미야를 보낼 때도..큰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3월 초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오 원장님이었다. 원장님은 병원을 그만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병원에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미아동으로 찾아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변화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원장님은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새로운 자리라는 변화를 택했다. 원장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원장님께 그동안의 도움에 대해 감사드렸고, 원장님은 내 조언 덕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하셨다. 고마운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송 원장님과 셋이서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어색하지만 함께 사진도 찍도 병원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참 많은 기억이 묻어있었다. 이제 이곳을 볼 수 없다니 아쉬웠다. 쓸쓸함이 느껴졌다. 다시 볼 수 없는 것도, 연락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제 만나는 공간이 홈펫 동물병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송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 밖으로 배웅을 나온 오 원장님과 악수를 나누며 말씀드렸다.

 

원장님을 알게 된 건 제게 큰 행운입니다.”

아이고, 저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그랬으면, 받은 만큼은 아닐지라도 원장님께 도움을 드린 일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변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

변화는 익숙하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15년 넘게 드나들었던 곳, 여러 기억이 떠오르는 곳,

홈펫 동물병원은 이제 그 자리에 있지 않겠지만,

오승섭, 그리고 송태호 원장님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한다.

 

http://blog.ohmynews.com/overkwon/554211

 

[오버권_사진 이야기]홈펫 동물 병원, 만남과 변화 그리고 고마움_20180311